[송하영의 영화 칼럼 II] 계급 사회 : 학교

1985년 작품 '조찬클럽' 이 남긴 여운

1985년 발표된 미국의 영화 '조찬 클럽'은 당대 청춘들이 학교에서 벌이는 일을 그려낸 작품으로, 스파이더맨 등 여러 후대의 작품에서 이 포스터를 오마주 하는 등 매우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3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80년대 영화임에도 현재 10대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가 우리에게 큰 귀감을 줄 수 있다고 여겨 칼럼에서 소개하게 되었다. 각자 다른 이유로 반성실에 모이게 된 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보니 학교 자체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조찬 클럽 (1985)

'They only met once, but it changed their lives forever.'

'그들은 단 한 번 만났으나, 그 만남은 그들의 삶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 조찬 클럽의 캐치프레이즈 -

 

'신분제도가 없어진 지 오래'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세상은 서열로 나누어진다. 구성원이 계급에 따라 분류된다는 표현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누구나 이런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어느 집단을 방문하든 구성원은 서열 1위부터 꼴등까지 나누어지며, 우리가 그 사실을 처음 깨닫는 건 아마 '학교'라는 공간에서일 것이다. 

 

 

영화 장면 중,  등장인물 브라이언이 '월요일에 자신을 만나게 된다면, 인사를 할 거냐, '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그러자 클레어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대부분의 학생처럼, 영화의 등장인물들도 친구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 혹은 가족들에게 비치는 자신을 의식하며 다른 친구들을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함께 반성문을 쓰고 하루 내내 학교에서 같이 지내던 학생들은 점차 '대외적으로 보이는 자신의 계급'과 상관없이 서로를 대하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위에서 언급한 캐치프레이즈가 담은 의미이다, 외적인 평판에만 집착하며 본심을 숨기던 아이들이 '조찬 클럽'이라는 한 번의 만남으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영화가 전달하고자 했던 목적이 무엇일까 - 하는 궁금증이 든다. 과연 이 인물들은 토요일의 만남 이후에 다시 어울리는 일이 있을까? 작품의 주제가 서열 간의 화합인가? 클레어는 여전히 친구들의 눈치를 보고 벤더는 열등감에 시달린다. 알리슨은 괴상한 상상을 하고, 브라이언은 소심하며, 앤드류 역시 엇나간 자존심을 지니고 있다. 이 한 번의 만남이 실제로 그들을 바꾸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라면, 학생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10여 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그들은 자신만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굳어져 있다. 절대적으로 바라봤을 때 긴 기간이라 할 수 없지만, 그들의 인생의 대부분이라는 점에서는 오랜 시간이다. 깔끔하게 해결을 내리기보다는, 오히려 이런 여운을 남기는 게 진정한 청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1020을 위한 영화란, 내적 성장과 자기반성을 도모해야 하지 않은가. 아이들의 날서있던 태도가 점차 바뀌는 걸 보며 우리의 인간관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일까? 관계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남기고 떠나는 '조찬 클럽' 이야말로 모든 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오는 시대이다.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이 앞으로만 달리다가 방정된 마음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것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현상인데, 자신을 위한 여유를 가지며 잔잔한 깨달음을 주는 영화, "조찬 클럽"을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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