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세희의 사회 칼럼]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 동화 분석하기

요즘 방영하는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속 주인공, 잔혹 동화작가 고문영이 정신병원에서 동화 수업을 진행하는 장면을 보다가 이 주제가 떠오르게 되었다.

 

주인공 고문영은 환자들에게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등의 동화로 수업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묻는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에 환자들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교훈들을 말하지만, 고문영은 동화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그들에게 말한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들.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환상 일 것 이다. 하지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날카로운 가시같은 내용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선녀와 나무꾼.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전래 동화이다. 이야기 속에서 사슴은 본인을 구해준 나무꾼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선녀와 함께 살라고 말한다. 나무꾼은 사슴의 말대로 하여 선녀는 인간세계에 발이 묶이고 나무꾼의 아이를 낳고 살아가며 하늘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어느 날 나무꾼이 숨겨둔 날개옷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는 과연 슬픈 사랑 이야기일까? 선녀는 나무꾼에게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날개옷을 도난당하고 어쩔 수 없이 그와 결혼하여 살아간다. 사슴과 나무꾼은 선녀를 강제로 묶어둔 것과 다름없다. 나무꾼과 사는 것이 행복했다면 선녀는 날개옷을 찾았더라도 하늘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선녀는 나무꾼이 숨겨둔 날개옷을 발견하자마자 두 아이만을 데리고 하늘로 돌아갔다. 즉, 선녀가 인간세계에서 애정을 가졌던 것은 아이들뿐이었다는 것이다. 선녀는 사슴과 나무꾼 때문에 원치 않는 삶을 살았다. 어렸을 적 이 동화를 접했을 때는 나무꾼이 날개옷을 숨겨서 선녀와 결혼한 것이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읽어 보니 선녀의 처지가 딱했고 선녀는 나무꾼과 사슴에게 농락당한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어떤 책에서는 신분의 격차에 포커스를 두고 해석했다. 나무꾼이 선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날개옷을 돌려주었고, 선녀가 아이들과 함께 다시 하늘로 돌아가자 그들을 그리워하다 사슴을 찾아가 방법을 물었고, 하늘에서 땅의 물을 길어가기 위해 내린 두레박을 타고 위로 올라간다. 나무꾼은 세월이 지나 어머니가 그리워지자 선녀가 준 하늘의 말을 타고 땅으로 다시 내려가는데, 그 말에서 한번 내리면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주신 팥죽을 먹다 말에게 떨어트렸고 놀란 말은 혼자 하늘로 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나무꾼은 평생 선녀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살다 죽었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앞서 내가 읽었던 선녀의 기구한 운명이 아닌 하늘에 사는 선녀와 평범한 인간인 나무꾼의 사랑으로 넘을 수 없는 신분 격차를 주제로 한 것이다.

 

이렇게 동화는 독자에 따라, 재해석하는 자에 따라, 수준과 시각 혹은 시대적인 사회의 흐름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으로 해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중에 나와 있는 동화를 읽을 때 무조건 아름답고 행복한 내용이라는 편협한 시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같은 내용이라도 여러 곳에서 출판한 것들을 읽어 보고, 여러번 곱씹어 본다면 새로운 부분을 발견하게 될 수도, 또 다른 해석을 하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칼럼을 위해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를 다시 읽어 보니 주인공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고, 결말과 교훈이 다르게 느껴졌다. 독서를 할 때 정해진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만 고려한다면 단편적인 사고만을 하게 된다. 다양한 관점으로 살펴보고 분석하며 나를 더 발전시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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