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현의 독서 칼럼] 시선으로부터,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하와이 제사 이야기

보통 '제사'라고 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정해져 있다. 병풍, 향초, 한 상 가득 차려진 제사 음식들. 복닥복닥 모인 가족들과 차례대로 절하는 풍경들. 어떻게 생각해도 '하와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과는 정반대다. 

그런데도 소설 <시선으로부터,>의 가족들은 호기롭게 외친다. 

 

"우린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낼 거야."

 

 

시대를 앞서간 여성 작가이자 미술가인 심시선의 사망 십 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제사를 지내기로 한 가족들이 하와이로 떠난다.  그것도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들고 제사상을 차리는 게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하와이를 즐긴 뒤 최고의 기념품을 하나씩 가져오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보물찾기 제사'를 지낼 거라 한다.  이들이 하와이를 즐기는 방식도 제사만큼이나 독특하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하와이 명소를 둘러보는 게 아니라, 서핑을 배우고, 훌라 댄스를 추고, 책을 읽고 팬케이크를 먹으러 다닌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하와이의 새들을 관찰하며, 제사상에 올릴 최고의 커피 원두를 찾아 시장을 헤매기도 한다. 

 

딱히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을 정도로, 이 책은 심시선의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이야기를 공평하게 담는다.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인 가족 구성원 각각의 사연과 경험을 하나의 큰 이야기로 엮어내는 서술 방식이 이 책을 쓴 정세랑 작가의 전작인 '피프티 피플'을 떠올리게 했다.  얼핏 보면 서로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나열되면서 하나의 결말, 하나의 소설을 이루는 것이 신기했고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 성차별 등 굵직한 사회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고민을 품고 하와이로 오지만, 그들 모두 심시선의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두고 온 걱정거리를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고, 특히 가족들이 각자 심시선과의 추억을 회상하고 고인을 그리워하는 장면들은 순간순간 유쾌하면서도 가슴을 찡하게 했다. 

 

이 책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역시  '심시선'이라는 인물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심시선 여사는 이미 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설정되지만, 각 챕터의 첫 부분마다 심시선이 쓴 글과 생전에 했던 인터뷰가 제시되며 심시선이라는 인물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회상으로만 등장하는 이 인물이 나는 정말 좋았다.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보고 비키라지.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그 옛날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었던 여성이 몇이나 되었을까.

 

심시선은 하와이 이주 노동자로, 그리고 1900년대의 동양인 여성으로 살아왔고, 그래서인지 예술가로서 유명해지고 안정된 가정을 꾸린 다음에도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지원을 멈추지 않은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동시대의 여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말 그대로 '기세 좋은' 딸들을 키워낸 사람. '엄마'의 역할에 얽매이지 않았고 자식들에게도 '딸'이나 '아들'로서의 역할을 강요하지 않은 사람. 한 번도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녀는 성격도 성별도 제각각인 가족들이 한데 모여 마음을 나누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이자,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요 인물이다. 나도 심시선처럼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사람으로 나이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와이'와 '제사'.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두 단어가 읽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묶이는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각 가족들이 제사를 위해 준비하는 물건들 하나하나가 그들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나타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마치 내가 그 가족 구성원이 된 것처럼 빠져들어 몰입할 수 있는 책이라 독서를 그리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어쩌면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고인과의 소소한 추억을 나누는 것이 제사의 진짜 의미일 거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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