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민의 시사 칼럼] 실명된 눈과 10억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안전권이 무시되어왔던 우리 사회에 대하여

며칠 전, 법원이 이례적으로 사업주에게 산재로 피해를 본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10억 원치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받게 된 이들은 4년 전 사업장에서 메탄올 분사를 하다 시력을 잃어버린 파견근로자였다. 그들에겐 메탄올과 관련된 어떠한 주의 사항들도 설명되지 않았고 기본적인 보호장비들조차 주어지지 않았었다고 한다. (참고: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3724&ref=A) 그런데 이 소식이 이례적인 사건으로 인식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상당히 이상해 보인다. 노동자가 산재로 피해를 보았다면 손해배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사를 접한다는 건 그동안 우리가 노동자라는 '을'이 거대기업인 '갑' 앞에서 패배해왔던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이 세태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까 한다.  

 

이번 재판에서 이긴 파견근로자들의 눈을 멀게 만든 건 그저 사업주의 욕심이었다. 에탄올을 써도 되었지만, 그저 비용이 2배가 든다는 이유로 그들의 손에 메탄올을 쥐게 한 것이다. 그들은 4년간 치열하게 공방을 벌여왔고 외로운 싸움을 해왔다. 그러나, 10억으로 그들의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들의 잃어버린 4년을 되찾아 줄 수 있을까? 돈으로 모두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나라의 핵심 수출상품인 자동차, 휴대폰 등은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납품한 부품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들이다.  하청업체들은 많은 파견노동자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의 상품을 만들어내며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다. 세계 10위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1조 7,208억 9천만 달러 GDP(출처: 2018 한국은행) 기업의 고위 간부들만이 이루어낸 것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그 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피와 땀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안전권이 지켜지고 누구도 그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어야한다.  그러나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는건 이런 기본적인 일들조차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3달 전, 코로나 속에서도 주요 헤드라인으로 뽑혔던 한 경비원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는가? 한 입주민이 60대의 경비원을 지속해서 폭행하고 괴롭힘으로써 끝내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한 안타까운 사건이다. (참고: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44895&ref=A) 파견노동자는 주변에서 흔히 뵐 수 있는 아파트 경비원, 청소용역 등 우리 삶의 다양한 부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그들은 항상 을의 위치로 불리한 입장에 서 있어왔다. 우리는 그들을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2017년, 앞서 말했던 메탄올로 인해 실명하게 된 노동자는 유엔이사회에 나가 연설을 하던 중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일회용 컵처럼 버려졌다". (인용: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112344001&code=940100) 이 말 한마디가 우리 사회가 노동자를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다양한 뉴스들을 접하며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 했던가. 수많은 소중한 노동자들이 강자에 의해 핍박당함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었어도 다시 내일 아침 가방을 들고 나간다. 사실 그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  그 사람은 당신의 집으로 매일 새벽마다 당신이 주문한 물건을 가져다주는 사람일 수도 있고 당신의 학교에서 점심을 준비해주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저녁마다 구두를 벗고 집으로 돌아오는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같은 청소년들은 몇 년 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누군가의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날이 오게 된다. 누군가에 의해 앞으로도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와 인권침해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귀 기울여보았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그들에게 감사와 지지를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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