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원의 독서 칼럼] 우리가 안아야 할 피폭의 잔해들

광주 민주화 운동, 그 아픔의 역사를 조각하는 소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처음으로 마주했던 것은 2년 전 도서관에서였다. 역사를 다룬 책이라는 걸 모른 채로 꺼내든 책을, 집중을 못 해서 앞부분만 다섯 번 이상을 읽었던 것 같다. 덕분에 앞 구절은 거의 외우다시피 했지만, 끝까지 완독하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그러다가 생각해보니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앞부분이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 않았던 것 같아서 신기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딱히 이유를 분석해보지 않아도, 이 책의 독자라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앞서 <소년이 온다>가 역사소설이라는 것을 잠깐 언급했는데, 이 책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책을 읽기 전,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사실 필자에게 광주 민주화 운동은 3.1 운동 같은, 듣자마자 유관순 열사와 만세운동 등의 키워드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상태로 살아왔던 과거를 반성하기까지 할 만큼 책은 우리에게 아주 커다란 무언가를 안겨준다. 그것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것인지, 아니면 감당하지 못해 너무 무겁거나 너무 뜨거워 편히 들 수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실로 무겁거나 뜨거워 안을 자신이 없더라도 우리가 안아야 할 우리의 온전한 역사이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듯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동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동호' 개인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호 이외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각자의 아픈 기억을 지닌 여럿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동호의 친구 정대의 이야기, 정대의 누나 이야기와 동호가 시청에서 함께 일했던 형 누나들의 이야기까지 여러 시점에서 풀어낸 글이기에 더 풍부하고 값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단 한 명에게 미친 영향이 아닌, '그들'에게 미친 영향을 꿰뚫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설 자체의 섬세하고 소름 돋는 묘사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책 소개'에서 가늠할 수 있다.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43976 네이버 책 인용)

 

완성도가 높고 짜임새 있는 책의 소개와 평은 인상 깊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장황하고 괜히 멋져 보이는 단어들의 연속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길지 않은 문장은 그의 이야기만큼이나 담백하다. 그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여러 시각으로 비추어보는 이야기. 책 소개에 적힌 문장의 대략적인 해석이다. 투시와 천착이라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단어를 적은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가 가볍지 않음을 부각한다. 그 피폭이 얇고 뭉툭했던 것이 아니라, 짙고 선명했다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다시 한번 새겨 넣기 위해서이다. 

 

그 풍경을 감히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회 교과서며, 역사 교과서며, 갖은 영화 또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해 본 광주 민주화 운동은 나에게 너무나 멀고도 먼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일 뿐이었다. 실제로 광주 민주화 운동과 나는 어떤 상관관계를 가졌는지 의문을 가졌기도 했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쓴 문학 작품들은 생각보다 참 많다. 하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아픔을 준 것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죄 없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시키는 총구와 저들을 향한 총알. 한 데 섞여버린 피 구덩이, 그리고 아픔을 증명이라도 해 주는 듯 붉게 물들어가는 거리. 작가는 표현을 너무나 섬세하게 한 탓에 독자들에게까지도 그 고통을 전해주려는 듯하다.

 

우리와 같은 아이들, 그리고 많은 광주 시민들이 고통에 짓이겨 죽임을 당하고,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수많은 종류의 잔혹하고 악랄한 고문을 당하며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점점 하나로 뭉쳐져 갔다. 검붉은 피와 누런 진물들, 그런 것들이 서로 뒤엉겨 사람들을 휘감았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냥 트럭 위에 정신없이 쌓인 짐들처럼 처참히 쌓여 불에 탔다. 검은 재가 되어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들의 붉고 푸른, 숭고하고 또 고귀한 영혼들이 흩어져 무엇이 되었을까. 하나하나 혼이 담겨 넘실거릴 것만 같던 한 강 작가의 문장들과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삶의 풍경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읽는 이들을 슬프게 한다. 정말 80년 5월, 광주에서의 싸움, 굴복, 아픔, 희생, 피해가 모두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고막이 터지도록 울렸을 총탄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무엇보다도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 달리던 심장과 뒤따르던 심장 소리가 전해지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나 놀랍고도 안타깝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출판 직후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소년이 온다 특별 한정판 양장본이 기존 책과 표지를 바꾼 형태로 출판되었으니 이 또한 참고하여, 이 글을 읽은 학생들 중 <소년이 온다>를 읽어보지 않은 학생이 있다면, 혹은 읽었었지만, 다시 한번 곱씹기를 원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분명 무너지면서 결국에는 모이게 되는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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