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중의 영화 칼럼] 이 시대의 엔터테이너,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메멘토>, <다크나이트>, <덩케르크>, 그리고 <테넷>.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예술성을 갖춘다는 것은 실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 매니악한 장르로써, 작품의 완성도로써 표를 얻어내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극장에 걸린 할리우드 공산품 블록버스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특정 장르(슈퍼히어로, 호러 등)의 공식을 따르며 적당히 눈요깃거리로써 제 몫을 하는 이 공산품들은 때론 가벼운 ‘팝콘 무비’가 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잦은 클리셰가 피로감을 불러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이 시점에서 할리우드 영화 시장에 발을 들인 한 감독이 있다. 그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영화들로 이 시대 최고의 감독 둥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영국 출신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초저예산 영화인 1998년 작 <미행>(The Fallowing)으로 데뷔하였으며 대표작인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와 <인셉션>(Inception)을 거쳐 현재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을 받는 감독이 되었다.  이번 시간에서는 그의 신작 개봉을 맞이하여 그의 영화들을 통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작품들이 가지는 특징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을 언급하면서 가장 먼저 그의 특징으로 영화의 ‘플롯’(영화적인 서사나 인물 관계 등을 배열해 놓은 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98년 데뷔작인 <미행>에서도 6,000달러의 제작비를 극복하기 위해 독창적인 플롯을 활용하기도 할 만큼 그의 주특기이자 가장 돋보이는 능력은 바로 플롯이다. 이쯤에서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 중 가장 플롯이 돋보이는 영화 몇 편을 소개하겠다.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자 전 세계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런의 명성을 알린 영화인 <메멘토>(Memento) 는 그의 영화 중 가장 독창적인 플롯을 가지고 있다. 먼저 <메멘토>의 플롯은 두 개이다. 영화의 주된 스토리라 할 수 있는 플롯과 더불어 부가적인 이야기로 보이는 흑백으로 전개되는 플롯이 있다. 두 플롯 모두 22개의 신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두 플롯은 진행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먼저 컬러로 진행되는 메인 플롯은 역행 방향의 플롯이다. 이미 사건의 결과를 영화의 초반부에 관객들에게 인지시킨 후 그 결과에 해당하는 원인을 점차 보여주는 식이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보이는 흑백 플롯은 이야기를 그대로 풀어나가는 순행 방향의 플롯이다. 이와 더불어 영화 속에서는 이러한 진행 방향이 다른 두 개의 플롯은 각각 번갈아 가며 섞여 있다. 예를 들어 컬러 신 1, 흑백 신 1, 컬러 신 2, 흑백 신 2 이런 식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복잡하게 얽혀있는 플롯을 채택하였을까? 그 답은 극 중 주인공의 특징과 관련성이 있다. 극 중 주인공인 레널드는 순행적 단기 기억 상실증이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그 이후의 기억은 3분 이상 지속하지 못하는 그의 특성은 바로 이 플롯과 관객의 관계로 직결된다.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는 컬러 플롯은 역행 방향의 플롯으로 한 사건이 제시되게 되면 관객들은 그 사건의 배경, 원인 등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 극 중 레널드의 경우 또한 한 사건에 대해 그 전의 기억을 지속하지 못해 그 사건의 경위 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메멘토> 속 플롯은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는 레널드의 상황과 심리를 플롯을 통해 관객들에게 간접적으로, 하지만 매우 효과적이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하여금 받아들이게 하며 후반부 컬러 플롯과 흑백 플롯이 교차하는 순간에서 이야기에 대한 효과적인 이해와 정보 전달을 위해 흑백 플롯을 삽입한 것이다.

 

그의 2017년 작 <덩케르크>(Dunkirk)는 다른 방식에서 뛰어난 플롯이라 할 수 있다. <메멘토>의 플롯이 그 방향성에 대해 독창성을 가진다면 <덩케르크>의 플롯의 경우 그 고유의 특성과 대해 탁월함을 지니고 있다. 1940년 2차 세계대전 중 있었던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육지, 바다, 하늘의 3개의 공간으로써 영화가 진행되고 각기 다른 플롯을 지니고 있다. 해변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병사들은 1주일, 구조를 위해 해변으로 가는 배에서는 1일, 철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적기와 싸우는 하늘에서는 1시간의 시간이 있다. 즉 각각 다른 방식으로 3가지의 시간대를 부여한 것이다.

 

 

이 플롯은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덩케르크>에는 주인공이 없다. 여러 인물을 따로 조명하며 한 사건의 성취에 있어서 그저 각기 다른 역할을 지닌 사람들만이 영화 속에서 묘사될 뿐이다. 이 복잡한 시공간의 플롯을 통해 영화는 해당 플롯(바다, 육지, 하늘)이 나올 때 그 속의 인물에게 집중하게 한다. 즉 각각의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순산에 이르러 영화의 세 가지 플롯이 합쳐지고 하나의 사건이 결실을 맺을 때 각 시점의 모든 인물을 조명한다. 이 거대한 사건의 성취가 영웅으로 대변되는 한 사람의 성취가 아닌 여러 사람이 일궈낸 공동의 성취이자 모두의 결실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것이다.

 

그의 영화에서 플롯은 단순히 사건의 배열이 아닌 이처럼 각각의 의미와 영화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자리 잡는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에는 단순히 플롯의 탁월함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화들에는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의 짜릿함과 드라마와 서사에서 우러나오는 영화의 깊이 또한 존재한다.

 

2005년 배트맨 시리즈가 그에 의해 리부트된 이후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들에는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의 영화적 쾌감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인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서 이 특성이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다크 나이트>에서 거대한 트럭이 전복되는 장면, <인셉션>에서 파리의 건물들이 서로 접히는 장면, <인터스텔라>에서 웅장한 음악이 곁들여진 긴박한 도킹 장면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장면들과 영화들의 공통점과 다른 영화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장면의 위치와 직결되는 특수효과의 사용 빈도이다.

 

그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는 다른 영화들처럼 특수효과나 화려한 장치들을 절대 남발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관객들이 영화에 녹아드는 부분을 정확히 인지하여 그 지점에 장면을 정확히 배치함으로써 적은 특수효과의 빈도로도 관객들에게놀런 표 블록버스터의 그 짜릿함을 경험하게 한다. 물론 여기에는 <다크 나이트> 삼부작과 <덩케르크>에서 돋보였던 놀런이 고집하는 적은 CG 활용에 의한 아날로그적 특수효과와 촬영도 큰 몫을 한다.

 

 

놀런의 대표작 <다크 나이트>와 <인터스텔라>는 그 드라마의 깊이로도 특히 탁월하다. <다크 나이트>에서는 힘센 인간에 불과한 배트맨의 불법적 수단에 대한 딜레마와 조커가 세우고자 했던 부정의로 대변되는 사회를 막기 위해 죄를 짊어지고 도망치는 그의 드라마는 이 영화가 왜 슈퍼히어로 영화 역사상 최고의 평가를 받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준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진부해 보일 수 있는 가족주의적 모티브를 효과적으로 녹여낸다. 이 영화에서는 우주에 떠난 아버지와 남겨진 딸에게 흐르는 시간을 달리하여, 그리고 다차원의 세계를 가족과 관련된 소재로 그려 내여 아버지와 딸 관계 간의 간절함과 그 감동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탁월함을 지닌다.

 

 

이러한 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런은 영화 내적으로도, 그리고 영화 겉에서 드러나는 외적인 부분에서도 다른 감독들과는 명확한 차별점을 지니는 훌륭한 감독이다. 이러한 그가 2020년 8월 26일 신작 <테넷>(Tenet)으로 돌아왔다. <테넷>에서도 그의 영화가 지니는 고유의 탁월한 지점들에 대한 성취는 분명해 보이고 또한 영화감독으로써 그의 과감한 시도로 대변되는 영화적인 도약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초기작인 <메멘토>를 봐도, 그의 대표작인 <다크 나이트>를 봐도, 그의 신작인 <테넷>을 봐도 크리스토퍼 놀런은 여전히 관객들에게는 영화의 쾌감의 절정을, 영화적으로는 거대한 족적과 성취를 일궈내는 이 시대의 엔터테이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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