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이의 독서 칼럼] '정신 성형', 과학 기술의 그림자

우리만의 이야기는 소중하다

새삼 고대하던 작가의 신작이 나왔을 때의 설렘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하면 결과가 제 생각에 못 미칠 때 실망감도 커지지만, 막상 작가의 책을 읽었을 때는 역시나 잘 기대했다는 만족감이 든다. 무릇 좋은 책이란 고급 정보를 준다거나 교양을 쌓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만이 아니다. 필자는 책을 읽는 독자의 즐거움이 제1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을 때의 순간 집중하게 되는 그 느낌이,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책을 읽었을 때도 책이 무슨 마력이라도 지닌 듯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고 말았다.

 

 

책의 제목은 '너의 이야기'였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기억에까지 침투한 사회를 그린 이 책은 ‘정신 성형’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보여준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성형은 물리적으로 우리 신체의 외양을 손보아 시각적인 효과를 보여주지만, 의억(義憶)이라는 가공된 기억은 '겉'이 아닌 '내부'의 개선 효과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자신이 경험한 적이 없었던 일을 직접 겪었던 일처럼 기억하게 만들거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억 일부를 지워버리는 행위를 통해 정신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잊고 싶은 것은 잊어버리고, 기억하고 싶었지만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한 개인이 모든 기억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의억을 통해 얻은 기억은 영원히 남게 된다는 점이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특정 기억을 형성한다. 누구에게는 이러한 기억이 있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그러한 기억이 없다. 이런 이유로 자신만의 추억이 생기는 것이다. 추억이라 할 만큼 좋은 기억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싫었던 일들과 좋았던 일들 모두가 ‘나’라는 자아를 형성해온 것이다. 이때 과거가 너무 암울하여 지워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이때 나는 겪어본 적 없지만 이런 기억이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 기억을 만들었다고 상상해 보아라. 전자는 나를 만들어온 기반을 지우는 것과 같고, 후자는 가공된 기억을 통해 덧없는 만족감을 느끼려는 것과 같다. 기억이 좋고 싫음을 떠나서, 지금의 나를 이루는 기억을 건드리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정하려는 행위이다.

 

만일 인간의 기억을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그 기술은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치매 증상이나 알츠하이머병 등의 치료를 위해 이용되어야 한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을 '기억을 만들어내는 기술' 또는 '기억을 보존하는 기술'로 대처하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만큼은 아니지만, 살아생전 그 사람의 기억을 어느 정도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과학 기술의 개발과 사용은 항상 조심히 다루어져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 과학 기술 윤리에 따라 기술의 검증 등의 과정에서는 가치 중립적으로, 기술 개발의 목적과 활용 방면을 설정할 때는 가치 판단을 통해 숙고해야만 한다. 과도한 인위적인 기억은 이야기 속 어느 한 가정의 모습처럼 부모와 아이가 분리되어, 서로 다른 기억을 지닌 삶을 살아가는, 가족의 경계가 사라진 비관적인 사회를 만들 것이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