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의 책 칼럼 6] 대도시의 사랑법은 무엇일까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제목은 저에게 하여금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충분한 제목입니다. 보랏빛을 띄고 있는 색감 좋은 하늘과 앞쪽에 보이는 하늘색 자동차의 너머에 있는 노란 불빛들이 창문에 촘촘히 채워져 있는 건물들이 보이는 표지는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립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입니다. 처음에는 [대도시의 사랑법]이 낭만적이고 감동적인 제 심금을 울릴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마냥 낭만적이기만 한 소설이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행동이나 말이 단편이 실제로 있는 일을 담았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할 정도로 현실적이며, 이야기도 개연성 있는 단편이었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에 실린 첫 번째 단편의 이름은 재희입니다. 이 단편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입니다. 첫 시작을 정말 잘 끊은 단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은 남자이며, 동성애자입니다. 주인공이 학과의 아웃사이더가 된 이후로 자조적인 합리화를 하며 복잡했던 마음을 정리할 때쯤 주인공의 인생에 재희라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주인공은 재희라는 여자와 함께 한집에서 생활하며 예기치 않게 재희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재희는 정착과 안정과는 거리가 먼 여자입니다. 하지만 친화력도 좋고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 시절 그들은 서로를 통해 삶의 여러 이면을 배웠습니다. 재희는 주인공을 통해서 게이로 사는 건 때론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배웠고, 주인공은 재희를 통해 여자로 사는 것도 만만찮게 거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재희와 주인공의 대화는 언제나 하나의 철학적 질문으로 끝납니다. '우리 왜 이렇게 태어났냐.' '모르지 나도.'

 

고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재희는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의 경우와는 달리 말입니다. 4학년 1학기, 재희는 인문계열의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한 대형 전자 회사에 취직합니다. 주인공은 전에 만났던 공대생-술을 마시고 주인공과 재희가 사는 집 앞에 찾아오기까지 했던 남자입니다.-을 다시 만나게 되고, 재희는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세 살 많은 동기 하나와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함께 한남동의 한 경양식 식당에서 식사합니다. 주인공은 재희가 만난 서울대 공대를 나와 반도체 연구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는 남자가 지금까지 재희가 만났던 남자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재희와 주인공에게 없는 안정성이 보인다고 합니다.

 

재희의 남자친구는 지은이-재희는 남자들을 만날 때마다 룸메이트의 이름을 지은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와 재희의 심상찮음을 눈치챘습니다. 그러다 재희는 그에게 '룸메이트 지은이'가 동갑의 남성이며, 게이라는 것을 실토하고 맙니다. 그 사실을 듣고 난 주인공은 배신감을 느낍니다. 타인에게 별 기대가 없는 주인공이 평소에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비밀이 재희와 그 남자의 관계를 위한 도구로 쓰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힘들어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과 재희가 공유하고 있던 것들이, 둘만의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둘의 관계는 전적으로 그들의 것만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재희에게서 몇 번 전화가 걸려 왔지만 주인공은 받지 않았습니다.

 

본가에 있는 동안 주인공은 소설을 썼고, 작가가 되었습니다. 공모전에 낸 소설도 덜컥 당선되고, 주인공은 수상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재희에게 전화합니다. 꼬박 석 달 만이었습니다. 그즈음, 주인공은 사귀고 있던 공대생의 부고 문자를 받게 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주인공에게 보낸 문자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 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

 

재희의 남자친구는 재희에게 프러포즈했고 재희는 승낙했습니다. 만난 지 꼬박 3년 만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웨딩숍이며 한복집, 커튼 집 같은 데에 끌려다니며 재희와 함께 물건도 고르고 결혼식 사회도 봅니다. 재희와 주인공의 마지막 밤에, 결혼할 사람은 재희인데 정작 잠들지 못한 건 주인공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재희네 결혼식에서 제대로 된 축가를 부르는 데 실패합니다. 재희네 신혼집은 송파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주인공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재킷을 벗어 던지고 눕습니다. 창 너머로 일렁이는 햇살을 보며 습관처럼 핸드폰의 문자들을 뒤지다가 핸드폰을 닫습니다. 그는 선반에서 밥공기를 꺼내 블루베리 봉지를 뒤집었습니다. 애석하게도 보라색 얼음 조각 하나만이 툭 떨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는 그때, 영원할 줄 알았던 재희와 자신의 시절이 영영 끝나버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재희는 언제나 때에 맞춰서 블루베리를 사다 놓았으며, 주인공의 연애사의 외장하드였습니다.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명명되는 시절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재희는, 이제 이곳에 없었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에는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 두 번째 단편으로 실렸습니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라니, 상당히 독특한 소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이 소제목은 주인공의 전 애인의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예상합니다. 주인공은 한 남자와 같은 강의를 수강하고 있었고, 남자가 회를 사줄 테니 술이나 한잔하자고 하여 아카데미 근처의 횟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우럭 한점의 우주의 맛이라는 소리를 내뱉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런 남자와 연인이 됩니다. 나이도 많은 남자는 제가 절대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뭣  모르는 주인공만 불쌍했습니다. 주인공은 후에 독백합니다. 그를 만나는 동안은 우주를 안고 있는 것 마냥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라고 말입니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주인공이 내뱉은 이 물음에 대해서 저는 아름다운 사랑은 아름답고, 추악한 사랑은 못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주인공의 엄마도 신을 향한 사랑과 주인공을 향한 사랑으로 암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 단편과 네 번째 단편의 제목은 [대도시의 사랑법]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입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에는 주인공과 규호의 만남과 헤어짐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간호조무사를 꿈꾸며 바텐더로 일하는 규호의 이름은 곧 특별해지고,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들을 찬란하게 만들어버리며 주인공의 아름다운 서울시티가 됩니다. [늦은 우기의 바캉스]를 보고 나서는 눈부신 시절은 지나갔으며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단편, [재희]가 너무 인상 깊어서인지 다른 단편들을 읽으면서도 첫 번째 단편이 계속 생각나더군요.

 

문득 첫 번째 단편의 초반에 나왔던 문장이 생각납니다. '사랑이 죄가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인상 깊은 독백입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사랑의 형태에 대한 편견들을 재고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사랑의 형태를 규율하고 강제하려는 사람들에게 삶의 정상 상태라는 기만에 취한 이들에게 그건 아니라고 강하게 모션을 취하는 일이 박상영 작가의 소설을 읽는 일이라고 했던 김금희 소설가의 말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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