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현의 독서 칼럼] '나를 보내지 마'를 통해 되짚는, 우리가 죄책감을 마주하는 방식

인간 복제를 다룬 SF 영화와 소설들은 굉장히 많다. 나도 복제 인간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을 많이 접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는 내게 더 특별하다. 이 책에 복제 인간이 세상 밖으로 나오며 겪는 모험 같은 것은 없다. 고통받던 복제 인간 주인공이 현실과 맞서 싸워 자유를 쟁취하게 되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은 자신이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렇게 담담하게 주인공의 삶을 그려내기에 오히려 그 순간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복제 인간을 만들어 장기 기증을 시킨다는 설정 자체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부자가 아니라 오히려 인생이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한다. 부자들의 경우 자신과 똑같이 생긴 복제 인간이 착취당하는 것을 보는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이유인데, 그동안 흔히 봐 오던 인간 복제의 설정들보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직접 보거나 자각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고통으로 우리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그 풍요는 받아들이되 타자의 고통은 직시하지 않으려 하고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걸 택한다. 이 책의 설정이 인간의 이런 심리를 아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책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들과 같은 하나의 인격체가 자신 때문에 고통받고 죽는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차라리 클론들이 아무 감정도 없는 벌레 같은 존재라고 믿어버린다. 그렇게 결국 죄책감까지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몫이 된다.

 

복제인간인 주인공 캐시는 연인 토미의 장기 기증 유예를 위해 '마담'을 찾아갔다가 애초에 기증 유예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깨닫는데, 이때 나오는 대사가 책을 읽은 후에도 계속 기억에 남았다. 

 

"우리가, 너희가 그린 그림을 걷어간 건, 너희 클론들에게도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어."

 

어쩌면 지금 우리 곁에도 그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클론'들이 있을지 모른다. 제3세계의 아동 노동자일수도, 복지를 보장받지 못한 채 도살당하는 동물들일 수도 있다. 우리는 껄끄러운 죄책감을 느끼기 싫다는 이유로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눈감기도 한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이 있을 때, 그것을 직시하고 죄책감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한 발 더 진보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게 이 책이 내게 알려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저자는 클론인 주인공의 삶을 담담하고 잔잔하게 묘사한다. 교육을 받고, 친구와 대화하고,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한다. 설정을 모르고 읽었더라면,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는 내 또래 소녀의 성장기로 읽혔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런 평범한 묘사 때문에 우리는 주인공 캐시가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그리고 캐시의 입장에서 책 속 사건을 바라보면서, 풍요는 누리고 싶지만 죄책감은 느끼기 싫어 불편한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는 이들의 부조리성을 체감하게 되는 것 같다. 자극적인 액션 신이 없어도 많은 걸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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