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윤의 영화 칼럼] 두 발로 설 수 있는 힘

인간은 커다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지구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아주 사소한 소리라도 말이다. 그런 소란한 지구에서 살던 사람이 고요하고 끝없는 우주에 고립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많은 사람은 그 적막과 고요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무언가를 삼켜버릴 것만 같은 까만 우주의 고요함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실제로 우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한정적일뿐더러 고립된 상태라면 정말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기 때문에 삶의 의지를 잃으리라 생각한다.

 

 

영화 <그래비티>는 우주에 홀로 고립된 정비사가 지구로 귀환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공상 과학 분야의 영화로 접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삶에 대한 아주 기본적이고도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오늘 필자는 공상 과학 영화인 <그래비티>에 담긴 인생의 철학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라이언 스톤 박사에게는 삶의 목적이자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딸 하나가 있다. 그런 그녀의 딸이 허망한 사고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자 라이언 스톤 박사는 삶의 의지를 잃고 바쁘고 시끄러운 사회에 환멸감을 느껴 무한의 고요함 속을 유영하고자 우주로의 도피를 택한다. 불행하게도, 라이언 스톤 박사는 러시아가 자국의 인공위성을 폭파하기폭파시키기 위해 발사한 미사일의 충격으로 만들어진 우주 쓰레기로 인해 우주에 고립된다. 처음 고립된 건 라이언 박사 혼자가 아니었으나 혼자가 아닌 둘 모두가 살아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동료의 판단과 그가 선택한 희생으로 인해 그녀는 우주에 혼자 남게 된다. 여러 고난을 겪으며 점점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 그녀는 삶의 희망을 잃었지만, 자신을 위해 희생한 동료의 환영과 만나 본 적도 없는 먼 곳에서 잡힌 전파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 덕분에 삶의 의지를 되찾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

 

그래비티는 한국어로 중력, 즉 만유인력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영화는 우주 공간에서의 생존을 그린 영화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단순히 우주와 과학, 자연과 인간을 담은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단순 공상 과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삶의 의지와 당연하게 여기었던 것들의 부재와 그들과의 재회, 그로써 얻는 소중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가 끝날 즈음 즈음, 라이언 스톤 박사는 지구에 도착해 땅의 흙을 만지고 두 발로 일어서며 기뻐한다. 지구에서의 삶에 싫증과 우울을 느껴 우주로 도피한 그녀였지만 그곳에서 역경을 겪으며 삶의 의지를 되찾고 다시금 지구에서 당연하게 느꼈던 것들에 대해 감사하게 되는 이 장면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축약해 놓은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살아가며 사람을 때로는 삶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고 싫증을 느끼기도 한다. 당연하게 누리는 자연과 두 발로 설 수 있는 능력의 가치를 잊고 살아갈 의지와 의미를 잃었을 때 그런 사람들에게 다시금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영화인 <그래비티>는 과학적 가치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심오한 철학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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