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원의 독서 칼럼] 눈사람이 된 여성의 이야기

존재와 소멸의 경계 속에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당장 우리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뉴스와 신문에서 보여지는 많은 사망 소식들을 듣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왜 항상 우리 주변에 부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일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죽음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였다. 한강의 <작별>에서는 두려움 없는 죽음과 우리가 죽음을 무서워했던 이유를 이야기한다. 책 표지에 반짝이게 장식된 '작별'이 글 속에서 여성이 처한 상황을 암시해준다. 책 뒷면에 적힌 글들을 아무 생각 없이 읽게 되었는데, '눈사람이 되어 버린 어느 여성에 관한 황망한 이야기'의 대목에서 책 줄거리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적어두어도 되는 건가, 싶어 의아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주인공 여성의 하루를 훑어보고 나면 심사평에서 '눈사람이 되어 버린 어느 여성'의 문장을 언급한 이유를 알게 된다. 

 

 

 

 

<작별>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강 작가에 대해서도 분명히 언급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진 그를 모르는 이는 아마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의 책을 읽어본 경험이 없더라도, 서점과 도서관을 드나들며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 서가에서 '채식주의자' 또는 '소년이 온다' 등을 마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글이길래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전 세계적으로 번역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가장 잘 알려진 책인 '채식주의자'를 읽는 것을 시작으로 한강 작가를 알아가게 되었다. 그 당시 어린 내가 읽기에 난해하고 어려운 책이었음에도 매료되는 특유의 문체와 분위기가 있어서 쉽게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끝까지 읽지 못하고 손을 떼기를 몇 번 반복한 뒤, 결국 단숨에 맨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나서의 여운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짙었다.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 단편 소설집인 '노랑무늬영원', '내 여자의 열매', '여수의 사랑'을 비롯해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까지 한동안 비슷한 문체에 빠져 그의 글들만 읽었었다. 잠시 잊고 지내다,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 에 실린 그의 단편소설 <작별>을 읽고,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한 마디로 소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어떤 책인가'를 알고 책을 읽는 것은 그렇지 않은 때보다 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읽을 수 있기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한강의 <작별>을 한 마디로 소개하기 위해, 앞서 첨부한 사진에도 적혀 있지만, 심사평에 언급된 이야기를 인용하기로 했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부터 인간이 아닌가.'

'소멸이라는 사건을 미분해서 존재와 소멸의 경계들을 보여주는 일.'

(김유정문학상 제 12회 수상작품집 중 심사평 인용)

 

주인공 여성은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벤치에 앉아 깜박 잠에 든다. 실제로 소설의 첫 문장은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이다. (한강-'작별' 인용) 이야기는 생각했던 전개와 다르게 흘러간다. 그는 둔해진 감각과, 부스러지는 손끝을 보며 당황하지만, 곧 그 상황에 적응해나간다. 짐짓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반응은 주인공 여성에게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애인이었던 현수, 중학교 3학년인 그의 아들도 본인의 애인, 본인의 가족이 눈사람이 된 것에 대해 믿지 못하며 놀라지만, '정말이네요'  (한강-'작별' 인용)  라는 현수의 말로부터 알 수 있듯 별것 아닌 일 취급한다. 결국 현수와 아들인 윤이에게 인사 같지 않은 작별을 나누고, 따뜻해지는 날씨에 못 이겨 녹아내린다.

 

주인공 여성이 녹아내리는 장면은 그의 죽음을 상징한다. 그는 아들 윤이와의 추억, 애인 현수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생을 마무리한다. 나는 죽음이 '예기치 않은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두려움이 없다면 고통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놀랍게도 이 소설은 주인공의 '하루'를 담았다. 24시간 동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에서 눈사람이 되고, 다시 눈발이 되어 생을 맺는 과정이 세분화 되어 있으며, 매 순간마다 주인공의 심리 상태 또한 시시각각 바뀐다. 어느 겨울날 벤치에 앉아 있다가 눈사람이 되어 버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부모님께 전화를 걸고, 아들과 포옹을 하고, 애인과 키스를 나누며 침착하게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럼에도 아들과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애인과의 만남을 되돌아보며 착잡함에 빠지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움을 여과 없이 표현한 것이다. 몸이 반쯤 녹아 형체가 뭉툭해졌을 즘 있는 힘껏 뒤를 돌아보며 삶을 갈무리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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