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휘의 독서 칼럼] 피구 코트 속 펼쳐지는 모두의 인간관계

황유미,<피구왕 서영>을 읽고나서

어른들은 쉽게 학생 때야 공부 잘하고 친구들과 잘 놀면 그만이지 않냐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학교 시험에서 대학에 갈 수 있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하고, 교실에서는 친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두려울 게 없는 청춘처럼 신나게 떠들고 놀면 그만인 것이 학창 시절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묘한 짜증과 한탄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른들이 말하는 학교생활이 순탄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같이 급식을 먹고 떠들어 줄 ‘친한 친구들’이 필요하다. 친한 친구들이란 말은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이 단어를 풀어보면 학급 내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급식을 먹을 때나 체육 시간 짝 피구를 할 때 스스럼없이 함께해 줄 친구들이라는 말이 된다. 사실은 모두가 기억도 나지 않는 꼬꼬마 시절부터 이런 인생을 함께할 동료를 찾는다. 그것은 유치원에서 함께 소꿉놀이하던 아이일 수도 있고 중학교 때 지우개를 빌려주던 아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들을 친근하게 ‘친구’라는 말로 엮으며 가족 다음으로 소중한 존재를 이들로 꼽고는 한다. 그렇다면 친구를 사귀기 위해 누군가가 ‘친구 학계론’이라는 수업을 해주고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위한 시험을 보는가? 안타깝게도 단순 사교를 위한 공부는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친구를 사귀는 것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으면서도 평생을 함께 따라다니고 어려운 숙제 같은 이 존재를 <피구왕 서영> 속 초등학교 4학년 서영이 겪는 어린 소녀들의 마음속 세계와 동기화되어 느낄 수 있었다. 서영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아이이다. 이사로 인해 전학을 가게 된 학교에서 서영은 교실 내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함께 다닐 친구들을 탐색한다. 모두 같은 나이 같은 반 안에 있는 또래 아이들이지만 제각각 성향이 맞는 아이들끼리 무리를 지어 다녀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서영도 이러한 집단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성향이 있는 아이들을 찾고 이미 구성원에서 배제된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으려 한다. 결국, 서영은 현지라는 아이가 주도하는 그룹에 원치 않게 끼게 되었지만 순탄한 학교생활을 위해 그들과 한 무리를 맺게 된다. 도중에는 누군가 정해놓은 것인 지도 모를 이 규칙을 깨부수고 싶어 하기에 모두에게 배제당하는 아이 윤정이 서영에게 손을 내밀었고 서영 또한 윤정의 섬세한 내면에 빠져들었으나 이미 학급 구성원에서 벗어 난 그녀의 손을 쉽게 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하루하루 현지의 감시와 윤정의 진심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10대 소녀 서영이 겪는 성장기를 제삼자의 측면에서 보았음에도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서영과 내가 한 몸이 된 것처럼 현지가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순간에는 덩달아 숨죽이며 긴장하고 윤정과 단둘이서 피구 연습을 할 때는 가벼운 날숨을 내쉬었다. 수학 문제보다도 어려운 친구 사귀기 문제를 겪는 작은 소녀의 마음속 깊은 일렁임이 끈끈한 막으로 둘러싸인 내 어린 마음을 두드린 것 같았다. 또한 서영은 윤정을 싫어하는 무리에 끼어있기에 학교에서는 윤정에게 말 한 번 걸지 못하고 자신의 피구 실력을 마음에 들어 하는 현지를 위해 열심히 피구를 한다. 서영은 달리기 경주 속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보다 곧 스스로에게 주어질 주도자의 혜택이 더욱 중요했다.

 

서영의 피구는 그런 의미였을 지도 모른다. 피구 경기는 두 팀을 나누어 상대 팀원들을 공으로 맞춰 아웃시키고 더 많이 살아남은 팀이 이기게 된다. 공에 맞지 않기 위해 작은 칸 안에서 바삐 움직이는 것만이 생존 방법인 게임. 공을 잡은 사람은 순식간에 모두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되고 그의 조준 위치에서 벗어 난 공간으로 도망쳐야 살아남을 수가 있다. 피구 경기 코트 안에서도 교실 한 칸 안에서도 이 규칙은 동일하다. 공격수의 눈에 띄지 않고 피하는 것이 전부인 살벌한 눈치 싸움 안에서 서영은 가장 근접한 해답을 그 누구도 아닌 모두의 기피 대상이었던 윤정이에게서 얻는다. 언젠가부터 교실에서도 조금씩 윤정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서영과 이것을 눈치챈 현지가 갈등을 겪던 날, 윤정은 피구 연습을 하다 말고 서영에게 묻는다.

 

 

“지금 공 잡을 때 무슨 생각 했어?”

“네가 갑자기 던졌는데 무슨 생각을 해.”

“그러니까. 학교에서 하는 피구도 생각 말고 그냥 해. 애들이 뭐라고 하는 것 때문에 좋아하던 걸 싫어하게 되면 너무 슬프잖아. 이렇게 거의 매일 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황유미, 피구왕 서영』 中

 

애들이 뭐라고 하는 것 때문에 좋아하던 걸 싫어하게 되면 너무 슬프잖아. 스스로 복잡한 피라미드식 학급 구성원의 경계 밖으로 나와 있던 윤정의 한 마디에 머리가 울렸다. 누군가를 위해 좋아하던 것을 관둘 수는 있어도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까지 되어버리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고 본연의 이성을 잃어버린 채 피구 코트 안에서 생존한다. 피구는 가장 잔인한 종목일 지도 모르지만, 코트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게 해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현지의 감독을 받는 코트 안의 경계는 서영의 피라미드 계급을 상급 시켜주는 대신 책과 피구, 그리고 윤정이라는 안식처를 빼앗겨야 했다. 코트 밖의 경계는 안식처로 돌아갈 수 있더라도 그에 따른 따가운 시선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서영은 그 가운데 금이라도 밟은 것처럼 늘 조마조마한 채 경기를 이어가야만 했다. 윤정은 그런 서영의 아찔한 경기를 끝내줄 수 있는 존재였다. 어쩌면 서영에게 있어 피구는 두 가지의 종류이다. 매일 윤정과 오후마다 연습하던 학급 경기 종목 피구. 그리고 현지와 같은 아이들에게서 거슬리지 않도록 열심히 그들의 눈엣가시를 피해 다녀야 하는 교실 내 피구. 두 종목 모두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경기이지만 공을 맞았을 때도 코트 밖으로 이끌어 줄 윤정이 있다면 어디에서든 피구왕 서영이 탄생한다.

 

결국 어른들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쉬운 말도 아니었다. 단순히 점심시간에 같이 급식을 먹고 체육 시간 짝 피구를 해 줄 친한 친구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 그리고 콤플렉스였다. 완전체가 되기 위한 사춘기의 성장통은 육체적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모두 겪었던 성장통, 콤플렉스. 그것은 친구라는 사회생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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