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던 우리의 소리, 뮤지컬 <서편제>

뮤지컬 <서편제>, ‘여백의 미’로 큰 호응 얻어···


2막의 마지막 부분, 속세에 찌들고 추위에 지친 동호는 눈이 먼 누이 송화에게 소리를 청한다. 십여 분이 넘는 시간 동안 송화는 심청가를 부르고 동시에 조명은 송화로부터 시작되어 관객석까지 서서히 퍼진다. 현대적인 가요에 묻혀 잊혔던 우리의 소리가 조명과 함께 뻗어 나가는 순간이다. 8월 30일에 개막한 뮤지컬 <서편제>는 8월 30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개막해 11월 5일까지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기립박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뮤지컬 <서편제>를 직접 만났다.

 

새로운 이야기, 동호


뮤지컬 <서편제>는 이청준 작가의 동명 소설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어린 송화는 의붓남동생 동호와 함께 진정한 소리꾼의 길을 좇는 아버지 유봉을 따라 유랑한다. 소리를 놀이 삼아, 친구 삼아 소리 길로 다니며 송화와 동호는 서로 마음을 나눈다. 하지만 동호는 아버지 유봉의 소리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생각하며 유봉에게 저항하고 판소리의 시대가 끝났다고 여겨 송화와 함께 유봉을 떠나려 한다. 반면, 송화는 아버지 곁에 남아 소리를 완성하고자 한다. 동호가 떠난 후, 송화는 동호를 향한 그리움에 소리 정진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런 송화의 모습을 보며 유봉은 진정한 소리를 얻기 위해 송화의 두 눈을 멀게 한다. 50년 후, 각자의 소리를 찾아 헤매던 송화와 동호는 다시 만난다. 뮤지컬의 내용이다. 영화와 전반적인 줄거리는 비슷하나 역동적이고 극적인 뮤지컬의 특성을 살려 등장인물들은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된다. 특히 ‘동호’는 뮤지컬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동명의 영화에서는 송화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동호의 얘기는 송화를 떠나는 것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동호가 바깥세상에서 자신의 소리를 찾아 도전하고 방황하다 끝내 지치는 모습을 세세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 고유의 소리를 잊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뮤지컬은 송화의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동호를 서술자로 제시하며 송화의 이야기를 재해석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긴다.

 


암전 없는 연출


뮤지컬 <서편제>에서의 연출 중 가장 돋보이는 점은 암전이 없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장막을 활용해 장면과 장면을 자연스럽게 바꾸고 움직이는 수묵화를 활용한 영상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 때문에 암전이 필요 없다. 가족과 문화를 잃어가는 민족의 아픔을 모두 포함해 많은 내용을 표현해야 하므로 속도감 있는 전개는 필수적이다. 특히, 장막의 이동은 무대를 분할하고 심지어는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게 한다. 극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대 무용 때문에 암전이 없어도 극은 지루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 무용은 주제를 직접 전달하지 않으면서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인물이 하나씩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앙상블은 흰 천 위에 작은 배를 움직인다. 거친 풍랑을 맞은 듯한 배는 천 위에서 크게 동요한다. 이는 자신의 소리 길을 따라 유랑하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준다.

 

완벽한 캐스팅


동호 역으로는 강필석, 김재범, 박영수가 캐스팅되었고 송화 역으로는 이소연, 이자람, 차지연, 유봉 역으로는 이정열, 서범석이 캐스팅되었다. 동호 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모두 대학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라는 것이다. 올리는 극의 종류가 제한된 대극장보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극을 올리는 대학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함으로써 동호의 심리를 다양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했다. 배우 별로 인물의 특색 또한 달라진다. 강필석 배우는 세월의 흐름과 동호 특유의 여린 성격을 잘 보여주지만, 김재범 배우는 조금 더 거칠고 순수한 동호를 보여준다. 박영수 배우는 젊고 패기 있는 동호를 보여준다. 송화 역으로 캐스팅된 배우들은 모두 판소리에 상당한 경력을 가진 배우들이다. 차지연 배우와 이자람 배우는 초연부터 쭉 송화 역을 연기해 왔기 때문에 더욱 자연스럽고 능숙한 송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소연 배우는 4연째인 이번 공연에 처음으로 캐스팅되었다. 따라서 새롭게 추가된 송화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유봉 역을 맡은 이정열 배우는 아집과 투지로 뭉친 강경한 유봉의 모습을 보이지만 서범석 배우는 자신이 스스로 소리를 완성하지 못하는 한과 아버지로서의 아픔을 표현한다. 이정열 배우와 서범석 배우 모두 초연부터 지금까지 유봉 역을 연기했다.

 

아쉬운 조명과 공연장


아쉬운 점도 있다. 전반적으로 초연 때의 느낌을 세련되게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옛날의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조명은 보라색이나 노란색 같이 뮤지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조명의 색을 활용하기 때문에 공연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무대 여러 곳에 조명을 설치해 장막에 비치는 그림자를 활용한 점은 인상 깊었지만 현대적인 분위기를 주지는 못했다. 3년 만에 다시 공연되는 <서편제>인 만큼, 더욱 세련되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갖추지 못한 점이 아쉽다. 또한, 공연장인 BBCH 홀은 뮤지컬 공연 장소로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연장보다는 강당에 가까운 내부의 모습은 조명과 음향을 훤히 드러내고 관객석 일부는 무대를 향하지 않고 있었다.


뮤지컬 <서편제>는 잊혀가는 한국의 소리인 판소리를 친숙하게 다가오게 한다. 또한, 물밀 듯 들어오는 외래문화 속에서 방황하는 동호를 통해 현대의 한국인이 가야 할 길이 어디인가를 묻는다. 뮤지컬 <서편제>는 11월 5일까지 공연된다.

 

자료출처

-뮤지컬 <서편제> 프로그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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