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재 환경 칼럼] 함께 공존할 수는 없나요?

환경에 대한 두 관점의 절충

“함께 공존할 수는 없나요?”

영화 ‘모노노케 히메’의 아시타카는 자연과 인간의 결투를 보며 이러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그가 이 질문을 제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환·경·보·호, 이미 숱한 매체에서 다뤄왔던 주제이지만, 보호보다 파괴가 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이 지구에서 사람들은 봄에 꽃놀이 대신 마스크를 쓰는 데 급급했고, 여름은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더워졌다. 가을은 단풍이 채 물들기도 전에 겨울로 변했고, 겨울은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아 눈사람을 만들 수 없는 계절이 되었다. 영화 ‘모노노케 히메’는 무려 1997년 개봉한, 12년 전 영화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모노노케 히메’에는 자연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생태 중심주의 자연관, 자연 그 자체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멧돼지 신과 들개 신이 생태 중심주의 자연관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연관은 ‘전일론적 관점’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자연이 인간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두 번째는 인간 중심주의 자연관으로 자연의 도구적 가치를 내세우며 이분법적 관점으로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여 바라본다. 철을 생산하는 타타라바 마을의 수장 에보시가 영화에서 이 자연관을 대표한다. 또 극단적인 인간 중심주의에서는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주장하게 되는데, 영화에서 국왕이 자연의 생(生)과 사(死)를 주관하는 시시가미 신의 목을 베어 불로불사의 힘을 누리려 했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단순히 보면 당연히 생태 중심주의 가치관이 무조건 옳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이 두 가치관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을 것을 주장한다. 에보시는 비록 멧돼지를 총으로 쏴 죽이는 등 자연에 해를 끼쳤지만, 나병 환자들을 정성으로 보살펴 주고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선(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 중심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켜 지구를 파멸의 길로 이끌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생태계의 일부로 보고 함께 ‘공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세대를 위해 자연을 잘 보존하면서 발전을 하는 것, 줄여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고 부른다. 오히려 ‘환경보호’보다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더 정확한 표현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부에서 태양광발전, 풍력발전을 하루빨리 진행하고 기업이 재활용 제품을 속히 내놓을 것을 가만히 앉아 요구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들이 앞장서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 또한 실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개개인이 버린 무수한 쓰레기가 ‘The Trash Isle’이라는 국가까지 만들고 미세 플라스틱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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