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수의 생명과학 칼럼]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님과의 인터뷰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관해 그 누구보다 깊은 통찰을 하시는 분으로부터 배움의 기회를 갖다!

유성호 교수님은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의 교수님으로, 사실 TV에서도 우리가 자주 뵐 수 있는 아주 유명한 분이시다. 유성호 교수님의 성함을 필자가 처음 접한 것은, 책방에서 읽을 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라는 유 교수님의 저서를 발견했을 때였다. 책 제목이 흥미로워 집어 들었다가 금방 빠져 읽기 시작하였다. 그 책의 첫머리 소개에서처럼 무려 1천 500여 건의 부검 경험을 쌓은 유 교수님께서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 타인의 죽음을 눈앞에서 많이 접한 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내게도, 저자인 유 교수님께서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관해 그 누구보다 깊은 통찰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두껍지는 않지만, 굉장히 알차게 죽음과 관련한 여러 이슈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는 ‘의사 조력 자살’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내가 생명을 살리는 직업으로만 여겨왔던 ‘의사’가, 외국에서는 아주 드물지만, 어떤 경우 환자가 죽는 데 도움을 제공하기도 하는 점이 일단 놀라웠다. 심지어 ‘잭 케보키언’이라는 의사는 환자가 스스로 버튼을 누르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계를 고안하였는데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는 존엄사의 한 형태라고 한다. 내 예상과 다르게, ‘의사 조력 자살’의 형태로 나타난 사례에 대해 외국에서는 많은 의료인이 환자의 존엄사, 안락사를 지지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다만 한국에서의 존엄사 또는 안락사의 허용 여부는 환자의 생명권을 둘러싼 문제이기에 더 신중하게 고려해야 옳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쨌든 유명인사로 워낙 바쁘실 것이기 때문에 필자가 유성호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성공시키기가 절대 쉽지 않으리라 미리 짐작하고 있었지만, 결국 영광스럽게도 ‘미디어 경청’의 칼럼 기자로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소극적 안락사인 ‘연명 의료 중단’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모두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무척 드문데,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소극적 안락사는) 엄격한 조건에서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돌이킬 수 없는 질병,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 진단한 의사 외 다른 의사 2명,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연명 의료 다음에 바로 소극적 안락사가 아니고 중간 단계가 많으며 스펙트럼이 넓으며 적극적 안락사까지 hurdle이 있으며 가치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한된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인간의 존엄적인 마지막의 죽음을 위해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과학 기술이 발전하여 미래에 죽지 않는 세상이 왔을 때, 삶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거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의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질병 치료에 대한 능력이 향상된다고 하더라도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생물종으로서 수명은 유한할 수밖에 없습니다. 뇌는 어쩔 수 없이 퇴행을 겪고, 부검을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의 뇌는 뇌의 주름이 많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유한한 삶이기 때문에, 죽음이 있기 때문에 더욱 삶이 즐겁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잊혀지는 것도 소중합니다.”

 

○ 부검을 많이 하셨는데, 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은 부검 사례는 무엇인가요? “병원에서 사망 원인을 알 수 없거나 타인에 의한 죽음일 때 부검을 합니다.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것이 국가 정책, 헌법, 인권 등에 있어 무척 중요합니다. 저는 1년에 200건 정도의 부검을 하는데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4년에 의정부에서 화재가 났는데, 어떤 여성이 5살짜리 아이를 끌어안은 채 화재 현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여성은 전신 화상을 입었는데, 아이는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까지...”

 

○ 교수님처럼 의과대학, 약학대학 등으로 진학하려는 고등학생들에게 해주실 당부의 말씀이 있으신가요? “공부 열심히 하세요. 우리가 다루는, 그리고 다루고 싶어하는 것이 인체라는 것이고, 약학, 의학 모두 직접적으로 인간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다루어지는 것이며 완벽을 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할 때는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깊게 생물학, 유전학에 관심 갖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들은 대학교에 들어와서 더 공부할 것입니다. 일단은, 현재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담으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주로 범죄사건과 관련된 재판에서 최종 판결에 큰 도움을 주는 ‘법의학자’가 살인사건과 관련된 재판에서는 특히나 피고인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곤 한다는 사실은 내게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렇지만 살인범이 노려보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침착함을 잃지 않고 진실을 왜곡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일하고 있다는 유성호 교수님의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겠다. 유성호 교수님의 저서를 탐독하고 더 나아가서 영광스럽게 그 분을 직접 뵙고 말씀을 나누는 기회를 가지면서, 의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상대적으로 외부에 덜 알려졌다는 법의학 분야에 관해 새로운 관심이 커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끝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뚫고 부검을 통해 억울한 죽음들의 진실을 밝히는데 헌신하고 계시는 유 교수님처럼 앞으로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주변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분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그리고 그런 분들에게 우리 모두의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가 더 모아지기를 간곡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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