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수의 생명과학 칼럼]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저)에 대한 단상

리처드 도킨스가 저술한 『이기적 유전자』(전면개정판, 2010)의 명성은 사실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얼마 전에야 제대로 읽게 되었다. 처음 출판된 1976년으로부터 이미 반세기가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주목받고 있는 도서라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명저서 중 하나가 분명하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 인기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주인공과 주변 학생들이 독서 모임을 갖는 대상도서로 등장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왜 이 책이 그토록 유명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 개체는, 유전자가 자기 복제를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 즉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1라는 요지의 저자 주장이 충격적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자기 복제를 계속 해나가는 이기적 유전자야말로 자연 속에서 진정 불멸의 실체를 가졌다.’2는 명제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런 저자의 기본 주장은 그동안 자신을 자율적이고 진정 가치 있는 존재라고 믿었던 인간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주었을 것이고 극심한 논란을 불러온 것이 당연하다.

 

 

다만 주의를 당부하고 싶은 점은,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하고서야 저자가 위와 같은 명제에서 진정으로 의도했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독자들이 저자의 의도를 오해 없이 이해하려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생존 기계’라고 하여 완전히 수동적인 존재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유전자가 ‘생존 기계’에 불과한 생물 개체들을 제어하는 방식은, 인형처럼 직접 조종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치 컴퓨터 체스 게임의 설계자처럼 사전에 일정 체제를 만들어두는데 그치는 방식이다.3 따라서 그 체제 안에서 생물 개체는 일정 수준의 능동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인간의 경우 유전자의 제어를 받는 ‘생존 기계’이지만, 다른 개체와 달리 지적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창조자인 이기적 유전자가 예정한 체제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가령 인간은 순수한 이타주의를 의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4 둘째, 가령 어미가 새끼를 정성껏 보살피는 것처럼 생물 개체 차원에서는 이타적인 행동이 분명한 경우가 있으나 이런 이타적 행동 역시 유전자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이기적 행동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날카로운 분석이다. 왜냐하면 다른 개체인 자기 새끼의 몸속에 들어앉아 있는 자신의 유전자 복제본을 이롭게 하겠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5 아마 다른 독자들도 이 대목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개체의 이타적 행동을 유전자의 이기적 속성과 배치되지 않게 아주 조화롭게 설명하는 논리가 전혀 흠잡을 데 없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저자의 주장 대부분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감탄이 느껴진다. 가령 ‘밈(meme)’이란 용어를 둘러싼 저자 주장의 파급력만 보더라도 이 책이 끼친 엄청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밈’이란 용어는 다름 아니라 저자가 이 책에서 처음 만들어낸 조어이다. 저자는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멤(mimeme)’을 ‘진(gene)’과 유사한 발음으로 변형하여 이 단어를 제안하였다. 저자는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무한 자기 복제의 성질을 갖는 또 다른 ‘자기 복제자’로서 ‘밈’이란 존재를 지적하였는데, ‘밈’이란 특정 문화가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적 모방 현상을 가리킨다.6

 

저자의 설명 대부분이 충격적이고 참신하면서도 대부분 수긍할 만하지만, 잘 이해하거나 수긍하기 힘들었던 설명도 물론 존재한다. 저자는 ‘진화’야말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존재 의의라고 가치를 부여하면서도, 그런 진화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이기적 유전자’의 역할에 관해서는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복제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진화의 진행에 필수적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7 여기에 논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불멸의 존재라고까지 찬양하는 ‘이기적 유전자’는 무한의 자기 복제를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진화’는 그런 자기 복제가 잘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 오류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위 설명에 따르자면, 그렇게나 대단한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존재가 아니고 이기적 유전자의 본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면 진화는 아예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 되어버린다. 결국 저자의 세계에서는 ‘진화’와 ‘이기적 유전자’가 상충하는 관계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진화론을 처음 내세운 다윈도 진화와 유전자 사이의 관계를 그렇게 생각하였을까? 저자가 유전자의 이기적 성격 혹은 무한복제 지향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다윈의 진화론에서 생각했던 ‘진화’와 ‘유전자’ 사이의 관계에서는 너무 벗어난 것 같다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설명만으로 진화론을 둘러싼 그동안의 논란이 완전히 해소될 수는 없다고 본다. 특히 우리 인간이 환경으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는 존재인지, 얼마나 자율적인 존재인지에 관해서는 저자의 주장을 참조할 수 있을 뿐 최종해답을 제시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인간은 유전자의 보이지 않는 제약과 굴레에 묶인 존재인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존재인지는 결코 대답이 쉽지 않은 의문이므로 계속 다양한 각도에서 해답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 및 인용 자료

1. 인용:  해당 책 65~69면

2. 인용:  해당 책 87~88면

3. 참고:  해당 책 112~113면

4. 인용:  해당 책 335면

5. 참고:  해당 책 66면 및 166면

6. 참고:  해당 책 322~323면

7. 참고:  해당 책 38면 및 6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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