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서의 영화 칼럼] 미성숙한 관계의 위태로움

여러분들은 학교에 다니다 보면 많은 유형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친구들 사이에서는 서로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서열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나고 나서 보면 그 서열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무엇보다 나를 짓누르고 있는 힘이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이 미묘한 서열도 무시할 수 없다. 필자는 이렇게 학창 시절 중 한 번이라도 느껴본 친구들 간의 미묘한 서열을 표현한 영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그 영화는 독립영화 ‘파수꾼’이다.

 

 

이 영화는 사실 기태의 자살을 밝히려는 기태 아버지의 움직임부터 시작한다. 기태 아버지는 이 영화에 나오는 유일한 어른이지만 이 어른마저도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태가 죽은 후에도 자신이 기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기태의 친구들을 추궁하기 바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파수꾼에 대표적인 친구는 2명이 등장한다. 무리 내에서 대장의 역할을 하는 기태, 기태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동윤, 고등학교 와서 새로 친해졌지만 미묘하게 다름이 느껴지는 희준이 있다. 기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혼 후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으며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해서 학교에서 그 사랑을 갈망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하지만 기태는 친구를 대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대장’으로서만 친구들을 대했고 제일 먼저 기태가 미묘하게 보여준 서열 때문에 희준이 기태의 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기태가 가장 의존했던 친구였던 중학교 친구 동윤은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라는 말을 기태에게 하고 셋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지게 되었다. 기태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살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강함은 기태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계속 시청하다 보면 기태는 감정적으로 매우 약한 사람이었으며, 오히려 감정적으로 강자는 희준이였다. 이 관계의 끝으로 기태는 자살을 선택하고 동윤은 학교를 자퇴하지만 희준은 홀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서 자신이 입는 타격을 최소한으로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영화 제목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파수꾼이란 단어의 뜻은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감정적으로 위태로운 기태를 동윤과 희준이 파수꾼이 되어 지키는 것을 아마 감독은 말하고 싶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이 둘은 기태를 감정의 위태로움으로부터 지키지 못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친구들끼리의 장난 정도로 보이는 괴롭힘을 당하는 희준이 매우 안쓰럽고 지켜줘야 할 존재처럼 보여주지만, 영화의 끝자락으로 달려갈수록 기태가 점점 궁지로 몰리고 기태의 행동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동윤과 희준은 자신만의 안식처인 집이 존재하는데. 영화에서도 동윤의 엄마가 등장해서 동윤을 간호해주는 모습, 희준이 자신의 친구들을 집으로 거리낌 없이 초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기태의 집은 오프닝에서 기태가 쓸쓸하게 서 있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이런 것으로 보았을 때 기태의 입지를 펼칠 수 있는 곳이 학교뿐이었기 때문에 기태는 친구들 사이에 존재하고자 했던 것 같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기태에게 정말 많은 공감이 되었다. 그가 친구들에게 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결국 기태를 끝자락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의 친구가 아닌 아버지의 부족한 사랑이라는 것을 영화의 마지막에서 알 수 있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는 다른 영화와 달리 불안정한 십 대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고, 학교에서 친구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끊기는지에 대해 세밀하게 표현하였다고 느꼈다. 고로 이 칼럼을 읽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시청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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