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재 인권 칼럼] 사람들은'grouping'을 좋아한다

차별은 왜 자꾸만 일어나는가?

최근 세계화가 거세짐에 따라서 다양한 문화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면서 '차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차별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 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마땅한 해결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grouping’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중 3번째 단계인 ‘애정과 소속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의 선을 그었고, 자신과 ‘서로 다르다’라고 느끼는 그룹의 사람들을 본인의 그룹과 구별하기 시작했으며 ‘구별’은 ‘차별’을 불러일으켰다. 이 ‘차별’을 받는 대상을 우리는 ‘사회적 약자’라고 명명한다.

 

‘사회적 약자’는 예로부터 여성과 장애인이 대표적이었으며 과거 미국에서는 흑인이 이에 해당되었다. 현재는 각국의 외국인 이주자들, 그리고 난민이 뜨거운 감자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grouping’이 차별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한 강연에서 들었던 내용 중에 “사람들은 선사시대부터 적을 구분하기 위해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경계를 갖는 것을 자연스럽게 내포하게 되었다"가 있었다. 상대와 나를 구분짓게 된 주요 원인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강연자께서는 다름을 경계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지금과 같은, ‘공존’을 요하는 사회에서는 의식적으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전언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식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명쾌한 해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grouping’과 연결지어 답을 고민하면 ‘명칭’이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각 그룹을 우리는 ‘명칭’을 통해 구분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남성/여성, 장애인/비장애인, 내국인/외국인, 흑인/백인, 남한/북한 중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를 계속 고민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이들을 구분하는 생각은 비난과 비하의 인식으로 변질되었다. 모델 한현민은 "다문화라는 용어가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격언 중에는 ‘말’을 조심하라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처럼 말은 칼보다 잔인하다. 2017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 3000명 중 23.1%는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차별과 무시를 당한 이유로는 ‘말투와 생활방식, 태도 등 문화적 소통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74.3%)’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제도적인 해결보다 인식적인 해결이 더 시급한 상황이다.

 

 

“I am who I’m meant to be, this is me.”

영화 ‘위대한 쇼맨’의 OST ‘This is me’의 가사 중 하나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정할 권리가 있다. 상대로부터 강제로 어디엔가에 소속될 권리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살면서 의도치 않게 명칭과 용어를 내세워 상대를 차별한 적은 없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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